​​​​​​​​​​​​​​​​​​​​​​​​​​​​​​​​​​​​​​​​​​​​​​​​​​​​​​​​​​​​​​​​​​​​​​​​​​​​​​​​​​​​​​​​​​​​​​​​​​​​​​​​​​​​​​​​​​​​​​​​​​​​​​​​​​​​​​​​​​​​​​​​​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
(The Ones Who Walk Away from Omelas)​​​


http://cs.sungshi​n.ac.kr/~dkim/omelas​​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

(The Ones Who Walk Away from Omelas)

어슐라 르 귄(Ursula Le Guin) 저



낭랑한 종소리에 제비들이 높이 날아오르면서, 바닷가에 눈부시게 우뚝 선 도시 `오멜라스'의 여름 축제는 시작되었다. 항구에 정박한 배들은 모두 돛에 매인 밧줄마다 깃발들이 나부꼈다. 빨간 지붕에 울긋불긋하게 담장을 단장한 집들과 이끼가 곱게 깔린 정원들 사이로 난 거리를 따라, 길가에 늘어선 가로수 그늘을 거쳐, 넓은 공원과 관청을 지나 축제 행렬이 나아갔다.

빳빳하게 다림질한 자주색이나 회색 예복을 입은 노인들과 엄숙한 표정의 직공장들, 그리고 아기를 안은 채 걸으면서 소곤거리는 수수한 복장을 한 명랑한 여인네들로 이루어진 행렬은 점잖은 축에 들었다. 또다른 거리에서는 징과 탬버린 소리가 뒤섞인 음악이 점차 빨라졌고, 그 음악에 맞춰 사람들이 춤을 추며 나아갔다. 행렬 자체가 춤이었다. 음악과 노래소리를 꿰뚫고 제비가 날아오르듯이 아이들은 높은 소리로 외쳐 대면서 행렬들 틈바구니를 헤집고 돌아다녔다.

모든 축제 행렬은 천천히 굽이치며 도시의 북쪽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푸른 들판' 이라고 부르는 촉촉하게 물기젖은 그곳의 넓은 풀밭에서는, 환한 햇살 아래 벌거벗은 소년 소녀들이 진흙투성이 발을 한 채 길고 유연한 팔로 경주에 앞서 들뜬 말들을 애써 달래고 있었다. 말에는 안장을 얹지도 재갈을 물리지도 않은 채, 단지 고삐만 물려 놓은 상태였다. 여러 갈래로 땋은 갈기에는 은색, 금색, 녹색 리본이 달려 있었다. 말들은 코를 힝힝 울리고 껑충거리며 서로 위세를 뽐내었다. 동물 중 오로지 말들만이 사람들의 축제가 마치 자신들의 것인 양 무척 흥분해 있었다. 멀리 북서쪽으로는 산 봉우리들이 바다의 만 쪽에 위치한 `오멜라스'를 반쯤 감싼 모습으로 솟아 있었다. 아침 공기가 너무나 해맑아서 `열여덟 봉우리' 꼭대기에 녹지 않고 쌓여 있는 눈이 짙푸른 하늘 아래 햇빛을 받으며 몇 마일에 걸쳐 백금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경마 코스를 따라 꽂아 놓은 깃발들이 알맞게 불어오는 바람을 받아 이따금 펄럭거렸다. 드넓게 펼쳐진 푸른 풀밭의 고요함 속에서, 도시의 거리를 지나 먼 듯 가까운 듯 조금씩 다가오면서 때때로 흩어지며 다시 모였다가 마침내 낭랑하게 울려 퍼지는 즐거운 종소리로 터져 나오는, 대기의 아련하고 달콤한 내음을 담은 음악 소리가 바람결에 실려 왔다.

즐거워라! 그 누가 이러한 즐거움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 그 누가 `오멜라스' 사람들을 제대로 묘사할 수 있을 것인가?

행복하게 생활한다고 해서 그들은 결코 단순 무지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이제 우리는 더이상 그들을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 그들 얼굴에 퍼졌던 웃음도 이제는 낡은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오멜라스'를 이와 같은 식으로 묘사하면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선입감을 갖게 마련이다. 멋진 종마 위에 올라앉아 고귀한 기사들의 호위를 받거나, 근육질의 노예들이 들쳐 맨 황금 가마에 앉은 왕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오멜라스'에는 왕이 없었다. 그들은 칼을 휘두르지 않았고, 노예를 부리지도 않았다. 그들은 야만인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오멜라스'의 법률과 규칙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단지 그런 것들이 유례없이 적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따름이다.

군주제나 노예제를 채택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들은 주식 시장이나 광고, 비밀 경찰, 폭탄 없이도 잘 지냈다. 그러나 다시 한번 이야기하건대 `오멜라스' 사람들은 단순 무지하지 않았고, 유쾌한 양치기도 아니었으며, 고결한 야만인도 유순한 유토피아 주의자들도 아니엇다. 그들의 세상은 결코 우리들 세상보다 단순하지 않았다. 문제는 우리들이 행복을 어리석은 것이라고 여기는 현학자들과 궤변가들이 부추기는 나쁜 습관에 빠져 있다는 점이다. 오직 고통만이 지적인 것이며 악한 것만이 흥미로운 것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것은 예술가들에 대한 배신 행위에 불과하다. 악덕의 진부함과 고통의 끔찍한 권태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에 불과하다. 고칠 수 없다면 차라리 동참하라! 고통스럽다면 반복하라는 식인 것이다. 그러나 절망을 찬양하는 행위는 기쁨을 비난하는 짓이며, 폭력을 용인하는 짓은 그 밖의 모든 것들을 잃어버리는 짓이다.

우리는 이미 갖고 있던 거의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더이상 행복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즐거움을 축복할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내가 어찌 `오멜라스' 사람들에 관해서 여러분에게 이렇다, 저렇다 말을 늘어놓을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은 순진하고 행복에 겨운 어린애들이 아니다. 물론 그들의 아이들은 행복하게 지내지만 말이다. 그들은 결코 비참하지 않은 인생을 영위해 나가는 성숙하고, 이지적이며 열성적인 성인들인 것이다. 그야말로 진정 기적과도 같은 일이 아니겠는가! 아아, 내가 그러한 경이로움을 훨씬 더 잘 묘사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여러분을 납득시킬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나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여러분 귀에는 `오멜라스'가 아주 오랜 옛날, 머나먼 곳에 있었던 동화 속의 도시처럼 들릴 것이다. 물론 각자가 나름대로 상상에 따라 그곳을 마음 속에 그려보는 것이 가장 좋을 수도 있으리라. 왜냐하면 나로서도 여러분 모두를 일일이 만족시킬 만큼 제대로 설명을 할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기술 문제를 생각해 보자. 그들의 거리에는 자동차가 다니지 않고 헬리콥터 따위도 날아다니지 않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오멜라스'의 사람들은 행복하기 때문이다. 무릇 행복이란, 꼭 필요한 것,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해롭지도 않은 것, 그리고 해롭기만 한 것을 확실히 구별할 줄 아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그러나 두번째 항목을 생각할 때에 -- 즉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해롭지도 않은 많은 것들, 다시 말해서 안락함, 호화로움, 풍요로움 등등 -- 그들은 중앙 난방이나 지하철, 세탁기, 그리고 우리들이 아직 발명하지 못한 그 밖의 굉장한 기구들, 이를테면 공중에 떠다니는 조명등이나 영구 동력 기관, 우리가 흔하게 앓아 눕는 감기의 치료제 따위를 모두 갖추고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그런 것들을 전혀 갖추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런 점들은 여러분 마음대로 생각하면 된다.

그러나 `오멜라스' 해안 근처에 흩어져 사는 여러 도시 사람들이 무척이나 빠른 자그마한 열차나 이층 전차를 타고 축제일 며칠 전부터 몰려든 `오멜라스'의 기차역은 비록 웅장한 농산물 시장보다는 평범해도 시내에서는 그래도 가장 멋진 건물이라는 것만은 꼭 밝혀 두고 싶다. 기차야 그렇다 치고 `오멜라스'에 대해 지금껏 이야기한 것만으로도 여러분들 중 도덕 군자 티를 내는 몇몇 사람들은 크게 놀라지 않을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즐거운 웃음, 종소리, 행렬, 경주마들, 게다가 어휴...... 만약 괜찮다면 지금까지 말한 목록에다가 북새통의 파티를 하나 더 덧붙여서 생각해도 좋으리라. 북새통의 파티 생각이 `오멜라스'를 눈앞에 그리는 데 도움이 된다면 부디 주저하지 마시기를......

그렇다고 눈부신 나체의 남녀 사제들이 우글거리는 곳에서 이미 반쯤은 황홀경에 취해서는, 저 거룩한 피의 신성과 하나되기를 소망하는 사람이라도 남자건 여자건, 혹은 연인이건 낯선 사람이건 간에 가리지 않고 누구하고든지 마구 성관계를 맺으려 드는 사원을 연상하지는 말라. 사실 처음에는 나도 그런 생각을 떠올리기는 했다. `오멜라스'에는 사원이 없다고 하는 편이, 적어도 사람들이 득시글거리는 그런 사원은 아예 없다고 하는 편이 낫겠다. 종교는 있지만 사제 계급은 없는 셈이다. 물론 굶주린 이들에게 성스러운 수플레(달걀 흰자위에 우유를 섞은 다음 거품을 일게 하여 구운 요리)를 주듯이 자신의 아름다운 나체를 즐거움으로 제공하면서 이곳저곳을 거닐 수도 있으리라. 그들도 행렬에 참여케 하자. 교합중인 이들의 몸뚱이 위에서 탬버린을 치고, 징을 울려 욕정의 즐거움을 알리며 다음이야말로 상당히 중요한 점인데 그러한 황홀한 의식 끝에 태어난 후손들을 사랑하고 돌봐 주도록 하자. 내가 아는 한가지 사실은 `오멜라스' 사람들은 아무에게도 죄가 없다는 사실이다.

처음에 나는 `오멜라스'에는 마약이 없는 줄 알았지만, 그것은 너무나 청교도적인 생각일 뿐이었다. 마약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오멜라스' 거리 어디서든지 희미하지만 은은하게 감도는 `드루즈'의 향기를 맡을 수 있으리라. `드루즈'는 처음엔 몸과 마음을 상쾌하고 맑게 해주고, 이어서 몇 시간 동안 꿈꾸는 듯한 나른함을 안겨 주며, 우주의 가장 깊숙한 신비를 드러내 보이는 황홀경을 경험케 한 다음, 마침내 도저히 믿기 어려울 정도의 터질 듯한 섹스의 즐거움을 선사해 준다. 게다가 `드루즈'는 중독성도 없다.

그러나 보다 소박한 취향을 가진 이들을 위해서라면 맥주가 제격이리라. 이 즐거운 도시에 그 밖에 무엇이, 도대체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물론 전투에서 얻은 승리의 느낌, 용맹스러움에 대한 경의가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성직자 없이도 잘 살 수 있듯이, 우리는 군인 없이도 잘살아 갈 수 있다. 무참한 학살을 통해 얻는 즐거움은 올바른 즐거움일 수 없으며, 그런 식으로는 진정한 즐거움을 얻을 수도 없다. 설령 즐거움이 있다손 쳐도 그것은 무서운 것일 뿐이며 그러한 즐거움의 크기 역시 미미하기 짝이 없을 뿐이다. 한량없이 관대한 만족감, 이 세상 모든 이들의 영혼 속에 살아 있는 가장 고결하고 공명 정대한 부분들과의 교감, 그리고 이 세상의 여름이 내보이는 위용! 그런 것들이야말로 `오멜라스'의 사람들 가슴 속에 풍기는 향기로움이며, 그들이 축복해 마지 않는 승리야말로 그러한 향기를 내뿜는 삶인 것이다. 그들 대부분에게 `드루즈'가 필요하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이다.

이제 행렬들 대부분이 `푸른 들판'에 도착했다. 들판 한쪽에 세워진 빨간색과 파란색의 천막에서 맛잇는 요리 냄새가 퍼져 나온다. 자그마한 어린이들의 귀여운 얼굴은 끈적끈적한 과자 부스러기가 묻어 있다. 소년 소녀들은 제각기 말에 올라타서는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출발선에 정렬한다. 작고 뚱뚱한 한 노파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바구니에서 꽃을 한 송이씩 꺼내어 사람들에게 나눠 주고, 훤칠한 젊은이들은 그 꽃을 자신들의 윤기 흐르는 머리카락에 꽂는다. 모여 있는 사람들의 한쪽 끝에는 아홉이나 열 살쯤 먹었음직한 아이가 혼자 앉아서 나무피리를 분다. 사람들은 멈춰 서서 귀를 기울이고 미소를 짓지만 아무도 그 아이에게 말을 걸지는 않는다. 쉼 없이 연주를 계속하는 아이의 검은 눈은 달콤하고 여린 마술과도 같은 피리소리에 깊이 빠져 들어 주위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는 마침내 연주를 마치고 피리를 든 손을 천천히 내린다.

아이의 오붓한 침묵이 신호가 된 양 출발선 가까이에 있는 관람석에서 애조를 띤 우렁찬 나팔소리가 급박하게 울려 퍼진다. 말들은 늘씬한 뒷다리로 뛰어 오르거나 울음소리로 대답한다. 기수들은 상기된 표정으로 말의 목덜미를 토닥이고 달래면서 속삭인다.

'진정하렴, 진정해. 사랑하는 말아......'

그들은 출발선에 나란히 정렬하기 시작한다. 경주 코스를 따라 몰려 있는 사람들이 마치 들판에 핀 채 바람에 흔들리는 수풀이나 꽃처럼 보인다. 마침내 `여름 축제'가 시작된 것이다.

여러분은 내 이야기가 믿어지는가? 축제와 도시, 그리고 온갖 즐거움에 관한 나의 설명에 수긍이 가는가? 아니라고? 그렇다면 한 가지 더 이야기하기로 하자.


`오멜라스'의 아름다운 공공 건물들 중 한 군데의 지하실에는 방이 있다. 아니면 어느 널따란 개인 저택의 지하실일 수도 있다. 그 방에는 굳게 잠긴 문이 하나 있을 뿐 창문도 없다. 지하실에 달린 거미줄투성이의 창문으로 새어 들어온 한 줄기 희미한 빛이 그 방 판자벽의 갈라진 틈을 따라 날리는 먼지를 빼꼼이 비출 뿐이다. 그 작은 방의 한쪽 구석에는 덩어리지어 엉긴 채 딱딱하게 굳어서 악취를 뿜어 대는 자루걸레 두어 자루가 벽에 기대어 서 있고, 그 옆에는 녹슨 양동이 하나가 놓여 있을 뿐이다. 바닥은 몹시 지저분하고 습기가 차서 축축한 것이 여느 지하실 창고와 다를 바 없다. 폭이 세 걸음에 너비는 두 걸음 정도인 방은, 청소 도구들을 넣어 두는 벽장이나 쓰지 않는 연장을 처박아 두는 다락에 불과하다.

그 방에 어린아이 한 명이 앉아 있다. 남자아이일 수도 있고 여자아이일 수도 있다. 겉보기에는 여섯 살쯤 되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거의 열 살쯤 먹었다. 그 아이는 정신박약아이다. 태어날 때부터 문제가 있었는지도 모르고, 공포와 영양 실조 때문에 점점 우둔해져서 마침내 버림받은 것인지도 모른다. 아이는 녹이 슨 양동이와 자루걸레에서 떨어진 곳에 구부정하게 앉은 채로 이따금 자기 코를 쥐거나 발가락 또는 생식기를 더듬더듬 만지작거린다. 아이는 자루걸레를 무서워한다. 자루걸레들이 무시무시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아이는 눈을 꼭 감아 보지만 자루걸레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고, 문은 굳게 잠겨 있으며, 아무도 오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다.

그러다가 아주 가끔씩 -- 아이는 그때가 언제인지 혹은 그 간격이 얼마나 되는지 알지 못한다 -- 문이 요란스럽게 흔들리다 열리고 한 사람 또는 여러 사람이 문간에 나타날 때가 있다. 그 중에는 방안으로 들어와서 아이를 발로 차 일으키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코 아이에게 가까이 가지 않는다. 단지 놀랍고 메스꺼운 표정으로 쳐다보기만 할 뿐이다. 서둘러서 밥그릇과 물주전자가 채워지고 나면 문은 다시 굳게 잠기고 들여다보던 눈들도 사라진다. 문간의 사람들은 결코 입을 여는 법이 없지만, 내내 지하실에서 갇혀 있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밝은 햇빛과 엄마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는 그 아이는 이따금 말을 한다.

'전 좋아질 거예요!'

아이는 말하곤 한다.

'절 내보내 주세요. 전 다시 좋아질 거예요!'

결코 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는다. 아이는 밤이면 살려 달라고 소리를 지르고, 크게 소리내어 울기도 했지만 지금은 단지 `으어어, 으어어'하는 일종의 신음 소리만 낼 뿐이며 그 소리마저 점차 뜸해져 간다.

너무나도 야윈 아이의 장딴지에는 살이라곤 아예 없고, 배만 불룩 튀어나왔다. 아이는 기름과 옥수수가루 반 그릇으로 하루를 연명한다. 아이는 벌거벗은 채이다. 자신의 배설물 위에 계속 앉아 있었기 때문에 엉덩이와 허벅지는 짓무르고 헐어서 상처투성이다.

`오멜라스' 사람들은 아이가 그곳에 있음을 모두들 알고 있다. 직접 와서 본 사람도 있고, 단지 그런 아이가 있다는 사실만 아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 아이가 왜 그곳에 있어야 하는지 모든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왜 그래야만 하는지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지만, 자신들의 행복, 이 도시의 아름다움, 사람들 사이의 따뜻한 정, 아이들의 건강, 학자들의 지혜로움, 장인들의 기술, 그리고 심지어는 풍성한 수확과 온화한 날씨조차도 전적으로 그 아이의 혐오스러울만큼 비참한 처지에 달려 있다는 사실은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오멜라스'의 아이들은 여덟 살 내지 열두 살쯤 되면, 그러니까 말귀를 알아들을 만한 나이가 되면 그 사실에 대한 설명을 듣게 된다. 지하실의 아이를 보러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젊은이들이지만, 때로는 나이 든 어른이 오기도 하며, 한번 더 보려고 다시 오는 이들도 꽤 있다. 아무리 설명을 그럴듯하게 들었다고 해도 젊은 구경꾼들은 그 광경을 보고는 언제나 충격을 받고 가슴 아파한다. 자신들이 그 아이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에 토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동안 전해 들었던 모든 설명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화를 내고, 분노를 느끼며, 무력감에 빠져든다. 그 비참한 아이를 위해서 뭔가 해주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들이 해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물론 아이를 그 지독한 곳에서 밝은 햇살이 비추는 바깥으로 데리고 나온다면, 아이를 깨끗하게 씻기고 잘 먹이고 편안하게 해준다면 그것은 정말로 좋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한다면, 당장 그 날 그 시간부터 지금껏 `오멜라스'가 누렸던 모든 행복과 아름다움과 즐거움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것이 바로 계약인 것이다. 단 한가지의 사소한 개선을 위해서 `오멜라스'에 사는 모든 이들이 누리는 멋지고 고상한 매일매일의 삶을 맞바꾸어야만 한다는 것, 한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위해서는 수천 명의 행복을 내던져 버려야 한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지하실 안에서 벌어지는 죄악을 방기하게 만드는 이유인 것이다.

계약은 엄격하며 절대적인 것이다. 그 아이에게는 친절한 말 한마디조차도 건네면 안된다.

그 아이의 모습을 보고서 이러한 끔찍한 모순에 직면했을 때, 대개의 젊은이들은 눈물을 흘리거나, 혹은 눈물도 나지 않을 만큼 화가 치밀어서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고는 몇 주일 혹은 몇 년씩 그 아이를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들은 설령 그 아이를 풀어 줄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이 그다지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다. 약간 더 따뜻해지고, 약간 더 많은 음식을 먹게 되더라도 아이는 의심할 여지없이 아주 조금밖에 즐거워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기쁨을 알기에는 너무나 퇴보했고 우둔해진 것이다. 더욱이 그 아이는 너무나 오랫동안 자유로워지는 것을 두려워해 온 것이다. 너무도 황량하게 지내 왔기 때문에 인간적인 대우에 제대로 반응하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너무나도 오랫동안 그런 상태로 지내 왔기 때문에 아이를 보호해 주고 있는 벽과, 그 아이의 눈에 익숙해진 어둠과, 깔고 앉은 배설물이 사라진다면 오히려 더욱 비참하게 느낄 것이다.

그 아이에 대한 의롭지 못한 행위에 가슴 아파하면서 흘리던 눈물은 현실이 보여 주는 이토록 끔직한 정의를 알아차리고 수긍하기 시작할 때면 메말라 간다. `오멜라스' 사람들의 빛나는 삶의 원천이야말로 그들의 눈물과 분노, 관용을 베풀려는 의도, 그리고 무력한 수긍에 있는 것일는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김 빠지고 무책임한 행복이란 있을 수 없다. 그들은 지하실의 아이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결코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들도 연민이란 것을 알고 있다. 고상한 취향으로 지어진 건축물들, 심금을 울리는 음악, 심오한 과학을 가능케 하는 그 모든 것들이 바로 그 아이의 존재 때문이며, 또한 그들이 그런 아이가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자신들의 아이들에게 그토록 자애롭게 대하는 것도 바로 그 아이 때문이다.

만약 그 아이가 어둠 속에서 코를 훌쩍이며 비참하게 앉아 있지 않다면, 피리를 불던 아이는 더이상 즐거운 음악을 연주할 수 없을 테고, 또 다른 아이들이 말 잔등에 보기 좋게 올라탄 채 여름날 첫 아침의 눈부신 햇살을 받으며 경주를 벌이려 줄지어 서 있을 수 없음을 그들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이제 여러분은 그들에 관한 이야기가 믿어지는가? 이제는 좀 더 납득이 가는가? 그러나 아직도 할 이야기가 하나 남아 있다. 이 이야기야말로 진정 믿기 어려운 일이다.

이따금씩 지하실의 아이를 보고 난 청소년들 중에는 눈물을 흘리거나 분노에 찬 채로 그냥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 이들이 있다. 실제로 그들은 결코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때때로 좀더 나이든 남자나 여자들도 하루 이틀쯤 침묵에 잠겨 있다가는 집을 떠난다. 그들은 길로 나가서는 거리를 따라 홀로 걸어 내려간다. 그들은 한참을 걸은 끝에 `오멜라스'시의 아름다운 입구를 곧장 빠져나간다. `오멜라스'의 농장들을 가로질러 계속 걸어간다. 소년이건 소녀건, 나이든 남자건 여자건 간에 모두들 혼자서 간다.

밤이 찾아오면 그들은 마을의 한 길을 따라, 창문에서 노란 불빛이 새어 나오는 집들 사이를 지나, 들판의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 간다. 그렇게 그들은 혼자서 서쪽으로, 아니면 산맥을 향해 북쪽으로 간다. 그들은 계속 걸어간다. 그들은 `오멜라스'를 떠나 어둠 속으로 가서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들이 가는 곳은 우리들 대부분이 이 행복한 도시에 대해 상상하는 것보다 더 상상하기 어려운 곳이다. 나는 그곳을 결코 제대로 묘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곳이 아예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가고자 하는 곳을 알고 있는 것 같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은......


* 1973년 휴고상(Hugo Award) 단편 소설 부문 수상작 *

+ Recent posts